일기

드라마 리뷰 | 우리들의 블루스(2022). 살아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라.

블로그 하는 으노 2024. 8. 4.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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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니까 스포가 있다.


2022년에 방영한 tvN의 드라마. 제주를 배경으로, 한 마을에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태로 담은 드라마이다. 참여한 배우들이 다들 어디 가면 주연을 꿰차는 배우들이라 화제가 됐던 드라마. 요즘 세상이 추구하는 자극적이거나 장르가 주도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잔잔하다가도 폭풍같이 몰아치는 우리네 인생의 곡절에 아파하고, 견뎌내고, 이겨내는 이야기. 성공하고, 실패하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미워하고, 용서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태어나고, 떠나가는 우리네 블루스.

블루스

블루스는 음악의 장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쩐지 오색찬란한 조명 아래에 남녀가 함께 추는 끈적끈적한 춤을 블루스라고 하기도 하지만. 블루스는 원래 미국의 노예 해방 이후 미국으로 건너온 아프리카계 흑인들이 미국에 정착하며 생겨난 음악이다. 그들은 노동과 삶의 비참함, 희로애락과 애환을 담아 노래를 부르고 인생의 곡절을 달랬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저마다의 삶의 곡절 앞에 피하기도, 맞서기도, 의연하게 견디기도, 울며 지나가기를 기도하기도 하며 그들의 블루스를 노래한다.

클리셰의 힘

이 드라마는 우리가 예상 가능한 여러 가지 클리셰를 따라가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에 노출되면서, 특히나 오늘날 기술이 가능하게 한 무수한 미디어에 노출되면서 '전형적인 클리셰'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이에 대해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영화, 드라마, 만화, 모든 이야기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은 참신한 이야기, 흥미로운 소재, 놀랄 만한 반전에 대한 기대이다.

이 드라마에는 그런 것이 없다. 클리셰로 가득한, 예상할 만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클리셰가 가진 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유행을 따르는 옷이 아니라, 특별한 날에 입을 예쁜 옷이 아니라, 매일매일 입어야 하는 편안한 옷. 나의 하루를 함께 맞이하고 함께 견디고 함께 마무리할 수 있는 그런 옷. 그런 옷은 짜임새와 만듦새가 중요하다. 이 드라마는 그런 짜임새와 만듦새가 훌륭해서 '전형적인 클리셰네'라고 하지 않고 '클리셰의 힘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힘은 같이 웃고 욕하고 울며 내 이야기를,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배우

짝꿍이랑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들의 연기에 감탄하며 봤다.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드는 힘은 글이라면 작가의 문장력일 테고, 영상이라면 표현하는 이의 표현력일 테다. 평범한 이야기일수록 그들이 쌓아 올린 연기의 금자탑이 빛나보였다. 나도 그 호흡에 같이 아파하고 울게 되는 것을 보니. 어떻게 이런 배우들이 하나의 드라마에 출연했을까. 놀라울 따름.

감상평

한수와 은희, 영옥과 정준, 영주와 현, 동석과 선아, 미란과 은희, 춘희와 은기, 옥동과 동석. 에피소드를 따라가며 내가 자라온 과정에 지나온 잊어버린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때는 잘 알지 못했던 부모의 아픔과 상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 같은 것들. 나의 곁을 지켜줬던 친구들과 이제는 내 옆에 있는 짝꿍과 내 모습. 여러 등장인물들의 생기 가득하고 치열하고 활기찬 어린 날의 인생과, 저물며 정리되는 황혼의 인생 사이에 우리도 있다. 스크린 너머의 세상과 같이, 또 그보다도 더 애달픈 현실의 우리네 인생. 휘몰아치며 다가오는 폭풍을 마주하고 있다면, 장을 정리하고 창문을 닫고 잠잠히 기다리며, 폭풍이 지나간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자. 우리들의 블루스를 불러제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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